눈을 질끈 감아줘
중학생이었을 무렵
고모집을 방문한 어느 날,
나보다 서너 살 어린 초딩 사촌이 자신이 썼다며 시 한 편 보여줬다.
순간, 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로 시작하는 <진달래꽃> 전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충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명퇴하신 전 교장쌤과 몇 번 라운딩을 나간 적이 있다.
완전 시로또일 때의 내 실력과 비교해서인지
감탄에 감탄을 하시더니, 다음 날 교무실에 파다하게 소문을 냈다.
폼도 끝내주고, 진짜 골프 잘 친다고.
그 이후로는 학교의 누구와도 라운딩을 나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나의 골프실력이래봤자 따보, 따보, 백십순이 정도인데 이를 어째.
숲속으로 공만 주으러 다니는 내 실력이 뻔히 뽀록날텐데 어떻게 나가겠는가.
아, 네 골프엘보우 땜시요, 아, 저 연습장을 한동안 안 나가서요, 아, 네 다음에요...
매일,
그럴듯함과 뽀록 사이에서 그네를 탄다.
진실이다, 아니다의 문제도 아니고
얼마나 들통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쉼표를 찍을 것인가, 느낌표를 넣을 것인가, 말줄임표를 달아줄것인가가
어찌 문장에서만 해당되랴.
괜찮게 살고 싶고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을 뿐이다.
어디 나 뿐이랴.
모두다 본질보다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해보일까,의 문제이다.
나이는 쌓여가고 만회와 수정의 기회는 적어지고
홀애비 냄새 흘릴까 무서워하는 노인네처럼 움찔움찔 자의식이 작동하기도한다.
가끔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앙드레 김 말고, 본명이 뭡니까?"
"김봉남입니다"
몇 년 전
청문회 자리에서 김.봉.남.이라는 이름이 들통나는 순간
모두가 박장대소했지만
정작 김봉남 자신만은 여전히 판타스띡하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럴듯하지 않아보일 때
흐트러지지 않는 것도 멋져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대체로 당신의 자주 감아주는 눈 덕분에 룰루랄라 살아가고있다.
그러니
잊지 말고
자주 자주
눈
을
질
끈
감
아
줘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