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한국말을 하더라고,
Tigerlily
2016. 8. 19. 17:02
지하철을 타고 가던 하정우와 전도연.
천정에 붙은 이종격투기 선수 효도르의 경기 광고전단지를 보며
하정우가 말한다.
-언젠가 말야
내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거든.
그 때 꿈에 저 사람이 나왔어.
한국말을 하더라고.
'너 괜찮아? 너 많이 힘들지?'
나한테 막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 가슴이 막 벅차가지고 대답을 했어.
'당신이 있어서 난 괜찮아.'
그리고 정말 한동안은 마음이 신기하게 괜찮은거야-
영화 <멋진 하루>의 한 장면이다.
시종일관 까칠하고 냉정했던, 진한 스모키 화장의 전도연이
대책없이 무능하고, 무질서하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하정우의 이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듯이,
나도 그 때 울었던 것 같다.
깊은 슬픔이나 쓸쓸함에는
하니도, 빨간 머리 앤도, 효도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히려 내가 나에게 묻고 답하는 게 신파스럽게도 가끔
신기하게 괜찮아지기도하다.
어른이기에
어른스럽기를 요구하지만,
실상 어른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어서,
그 보푸라기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재채기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짜증스러움이 되어 입을 다물고 싶어질 때가 많다.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번 더 본다는 것.
삼십이나, 오십이나, 육십이나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철이 드는 것도,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도
개뿔도 없어요. 단지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
휴, 위안이 된다. 다들 그런가보니.
봄 한 번 더 보면 족하지 뭐.
전도연을 보려다 하정우를 발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