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lily 2016. 7. 14. 11:01

 

 

 

 

 

하자, 가 아니라

하면 할게, 라는 사람이

무조건 착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

사랑은 독한가보다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내 위에 올라탄 네가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찰싹 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즉흥이다

그런대로 네게 뜻이 될 만큼은

내가 자랐다는 얘기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윗목 소쿠리에 놓여 있던

사과를 깎는다

받아먹는 너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진다

물러

무르면 지는 거라는데 말이지

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언젠가 자다 깼을 때

등에 베긴 그 물컹이

갓 낳은 새끼 강아지였다며

너는 이제 와 소용없는 일을

오늘의 근심처럼 말한다

쓸데없다.

 

 

 

김민정의 시, <비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