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 사이다
<오성 사이다>
실리, 우리동네 뒤에는 넓디 넓은 뽕나무 밭이 있었다
뽕밭 주인 이층집 아저씨 지봉금씨는 근동에서 유일하게
자가용이 있었지만 우리 아버지의 짐자전거가 항상 그 차를 앞질렀다
그 집 막내딸 정환이는 가끔 이유없이 내게
십원, 오십원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고
나는 그 돈을 받아내느라 자주 힘이 들었다.
"어린 것이 그새 무신 삼시랑 꿈이다냐"
감꽃이 쌀밥처럼 고봉으로 필 때 쯤이면
뽕나무 늙은 발목까지 다리다리 붙은 오디가 꿈 속 손톱 밑까지
검붉게 물들였고 고랑고랑의 설핏 꽃뱀, 꽃뱀에 소스라쳐
얕은 잠에서 깨곤했다.
"엄마 젖 많이 먹었냐"
학교 가는 길 뽕밭 가장자리 외딴집, 만식이 아버지의 젖은 등짝은
항상 적막했지만 길을 막고 묻는 질문은 매양 같아서 아늑했다
정작 엉겅퀴 꽃봉오리처럼 나의 젖가슴 멍울 딴딴해질 무렵에 이르러서는
그는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고
고요가 덜어낸 자리에는 움푹 조바심이 대신들어찼다.
이층집이 이사를 가고 만식이네 집도 헐릴 즈음에는
내게도 뽕밭 언저리까지 바래다주는 애인이 생겼고
그의 수염이 내 삶 깊숙히 비집고 들어오던 밤에는
오디대신 하지감자꽃 두근두근 하얗게 피어났다.
뽕밭을 가로 질러 뛰어간 버스 정류장에서
너무나 밀리는 버스는 간간이 나를 태우지 않고 떠나갔고
그 덕분에, 주저앉은 길 가에서
채송화 까만 씨앗의 황홀한 윤기나
멈칫멈칫 한참이나 망설이며 지는 꽃들의 습관이나
봉다리에 담아 처마에 걸어뒀다가 젖은 날에 내다쓰고 싶은
따글따글한 늦여름의 햇살 따위와
가끔 눈이 맞곤 했다.
소풍갔다 오는 길,
종일 놓지 못하던 김 빠진 오성사이다
손 안에서 데워진 다섯개의 별처럼
눈 감아주고, 숨겨주고, 놓아주던
내 유년의 뽕밭.
'2016. 07. 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