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rba the Greek
시험감독
Tigerlily
2016. 5. 3. 12:29
<시험감독>
안단테, 모데라토, 포르테시모,
이불 속 수음처럼
필통 속에서 은밀했던
나의 첫 컨닝의 추억
시험이 끝난 후 미어터지던
단체 영화 속 자막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잊지않고 뜨고 또 떴지만
그 친절이래야
내 빨강 필통 속
꼬깃한 음표의 촉감엔 어림 없었지
'부정 행위는 물론이고
그 유사행위도 하지 말아요."
엉겁결에 유사 어른이 된 나는
시험지를 나눠준 후 교탁 앞에 서서
여분의 OMR카드에 낙서를 하거나
야한 생각들로 슬금슬금 빈 칸을 채운다
더 이상은 누구도
가장 알맞은 답이나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골라내라고 말하지 않지만
꽃물처럼 깊던 오답의 흔적이나
길을 잃고 들어섰던 낯선 숲에
다시 들어서는 습관 따위들로 가득 채워져
나의 필통은
자주
지퍼가 반쯤 밖에 닫혀지지 않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