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rba the Greek
발가락 양말
Tigerlily
2016. 1. 25. 12:42
<발가락 양말>
보일러 고치러 온 아저씨,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었다
어른 남자의 낱낱이 감싼 꼬물거리는 비밀이
내게, 일부러 들켜준 흉터 같아서
곤히 잠든 방문을 뒷걸음질로 닫아주듯
햇 유자차 처음 뚜껑 열어
뜨거운 물 부어드렸다
두어개의 부속품을 갈아 끼우자
보일러는 다시 작동되고
무언가를 고치는 일이 그토록 명쾌한 게 신기하여
나는 주제넘게
그가 어딘가에 벗어놓고 온
아직도 체온이 남아있는 미련이나
미처 수습하지 못한 후회에 대하여
안심시켜 주고 싶어졌다
마른 눈썹 위에 돋는 초록잎을 따내어, 말라갈 즈음에야
마음을 고치는 일이, 고쳐 먹는 일이
물에 젖은 성냥개비 그어대는 일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 2016. 1. 25. Tigerli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