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글자란 참 고맙군요

Tigerlily 2014. 10. 8. 20:33

 

 

1. 글자란 참 고맙군요.

 

 

"타이웨이 교수가 노목희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짐승들을 먹이고 거두는 목희(牧姬)라서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그의 영어는 음절을 흘리지 않고 정확히 발음해내는 영국식이었다.

-글자란 참 고맙군요."

 

김훈의 장편 <공무도하>를 읽다가 마주 친 한 줄의 문장이

나뭇잎을 타고 또르르르 떨어지는 빗물처럼 여리고도 선명하다.

말과 글과 표현의 숲에 갇혀서,

그것이 제한해 주는대로 살 수 밖에 없는 허방한 우리들이기에

그에 의해 비로소, 느티나무가 되기도 하고, 엉겅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자란 슬프기도 하지만,

참 고맙기도하다.

 

 

 

 

 

2. A fly on the wall

 

 

한참 전 재미나게 보았던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속 박수하라는 인물은

상대의 머릿속 생각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픽션에 환타지를 솔솔 뿌린 웰메이드의 전형이다.

 

 

a fly on the wall, 윤승운의 만화 속 도깨비 감투.

표출되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투시한다는 것이

결코 즐거운 환타지만은 아닐 듯도 하다.

볼 수 있는 부분과 볼 수 없는 부분,

어쩌면, 볼 수 없는 부분만이 옹골지게 나의 것이 되기에

모호함은 답답함을 넘어 다행스러움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