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그린 파파야향기

Tigerlily 2014. 10. 8. 20:33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

-이병률/생활에게, 일부-

 

 

 

절반의 나를 놔두기도 하고,

절반의 나를 내보내기도 할 수 있는 마음의 트랜스포밍은 

이병률의 소망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일상이란

비루먹어 듬성듬성 털이 빠진 늙은 개처럼,

한 소끔 차이로 절정에 이르지 못하는 푸르딩딩 녹슨 욕망의 지루증처럼,

뻣뻣하고, 쪼글쪼글하고, 날금날금하고,

결정적으론, 겉돌뿐이다.

 

 

신문지를 접듯, 생각과 마음도 척척 접어

좀체로 손이 닿지 않는 시렁 위에 올려놓아 두면

거기서 푸른 곰팡이꽃 눈부시게 피어나게 될까

 

 

반죽처럼 뚝 떼어진 나는

그나마 손잡이가 있다면,

나니아 연대기의 벽장문을 밀치듯

그 세상에 발을 내딛고

그린 파파야 잎사귀 사이로 말 없이 웃는

무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귀뚜라미 소리나 풀벌레들 노래 끊이지 않는

푸른 정원 한 구석에서

몇 가지 되지 않는 재료로 정갈한 상을 차리다가

어둠이 내리는 당신의 방 안에

뒤꿈치를 들고 분주히 다니며 등불을 있는대로 밝혀 주는

무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