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함의 즐거움
홍상수는 그의 17번째 영화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에서도
'누구나 다 맞다'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매번 그렇듯.
그의 영화 속 주인공 남자들은 대개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혹은 교수이다.
홍상수의 영화의 가장 큰 패턴이라고 하는 '반복과 차이'의 구조 속에서
그 주인공들은 속물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본인들만 모를 뿐,
관객은 마치 삼인칭 전지적 시점의 독자처럼 그들의 찌질함을 헬리꼽터를 타고
위에서 바라보듯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속물스러움과 찌질함이 개탄스럽지 않다.
'언니가요, 감독님을 그냥 봐주쟤요.
예술가니까 그냥 봐주기로 했대요'
그냥 봐주기로 하는 것은, 봐주고 싶은 것은
그 찌질함이 너의 것만이 아니고
나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움찔 확인하기 때문이다.
다들 비스무레하게 개찌질이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위로이고, 쾌감이다.
세살 때 엄마가 무릎에 자신을 눕히고 귓밥을 파주던 때.
자신의 볼에 닿던 엄마의 감촉과 냄새.
결혼 40년 만에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극장에 간 뒤
근처 공원에서 보냈던 한가한 오후의 추억.
관동 대지진의 난리통에 대나무밭에서 뛰어놀다가 어른들이 만들어 주던 주먹밥을 먹었던 기억.
...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다른 모든 기억은 잊고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추억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해 고심하여 고른, 등장인물들의 추억들이다.
한결같이 소박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들의 삶을 <wonderful life>라고 했다.
'감사해요. 이런 감정 가질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알콜 기운이 귓볼까지 거나해진 유부남 영화감독 정재영이
김민희를 꼬시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하는 말에
객석 이곳 저곳에서는 킥킥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이 유치의 거적을 안 써본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러기 때문에 너도 맞고 나도 맞다.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
원더풀 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