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백석이 사랑했던 나타샤, 자야는
천억원대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헌납하면서
그게 '백석의 시 한줄 만도 못하다'고 했답니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와 백석이 서로 사랑했던 모습이 이뻐서
나도 흰 당나귀처럼 그들의 문 밖에서 두 발을 쳐들고
응앙응앙 좋아할 것 같은 겨울, 그 겨울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백석을 무지 좋아하는 시인 안도현은 백석 시인을 도토마리 씨앗 같다고 했습니다.
짝사랑의 햇수가 30년이 가까이 되었는데도
지겹지도 않고 몸에 달아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기에
어쩌면 백석이 아니라, 자신이 그의 몸에 붙은 것 같다고.
요즘도 시가 잘 되지 않을 때, 해괴하기 짝이 없는 시들이 괴롭힐 때
백석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길이 보인다고.
그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길을 만들어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시인을 만나 메밀국수를 한 사발 먹기도 하고
폭설이 쏟아지는 시인의 집, 뜨거운 구들장 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짝사랑의 대상인 백석이 살아있다고 가정하다라도 그 행복의 분량은 사랑받는 백석보다는
가상의 길까지 뚫어놓은 안도현 시인의 것이 몇 배나 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그 대상에게 감격도, 떨림도, 기다림도 되지 못함을 확인할 때 마음은 길을 잃게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안도현은 백석의 이 싯구절에서 '높고'에 뻑 갔다고 했습니다.
'높고'라는 말을 갖다 놓음으로써 양쪽의 형용사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 구차함을 일거에 해소하듯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소망하고 하다못해 짝사랑의 절름발이 짓을 한다하더라도
그 안에 '높고'라는 어휘 하나의 힘만 있어도 그리 정처없지는 않을 듯합니다.
대상은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고귀해지기도 하고, 천박해지기도 합니다.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찍사의 애정이 드러나듯 말입니다.
신경숙의 단편 <풍금이 있던 자리>는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데리고 온 여자는 분명 엄마의 시앗이고 아빠의 불륜의 대상임에 틀림없지만
그 봄날 그렇게 찾아와 우리 곁에 열흘 쯤 머물다 간 여자를 작가는
- 배추를 뽑을 때는 배춧잎같이, 파를 뽑을 때는 팟잎같이 파랗게 고왔습니다.
-잔 꽃이 아른아른한 병아리 색 작은 요를 깔았어요.
등의 묘사의 힘을 빌어 '아름다운 여자'로 묘사합니다.
백석이 높고 고결한 시인이 되고
소설 속 여인이 파랗게 고운 여자로 묘사됨으로써
사실은,
붓을 잡은 자인 안도현과 신경숙이 비로소 아름다운 사람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묘사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