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체리향기

Tigerlily 2014. 9. 16. 09:49

 

 

 

 

 

 

내 얘길 해주지.

갓 결혼하고 난 후의 일이야.

난 내 아내와 문제가 끊이질 않았어.

너무 지친 나머지 결심을 했지. 모든 걸 끝내기로.

새벽에 목을 매달 밧줄을 챙겨서 오디나무 농장으로 갔다네.

주위는 아직 어두웠교 나무 위로 밧줄을 던졌는데 걸리지 않는거야.

한 번 두 번 계속 던졌지만 실패했네. 결국 직접 올라가서 밧줄을 묶는데

손에 아주 부드러운 것이 잡혔지. 오디열매였어.

무심코 그걸 먹었는데 달콤하더군.

두 개를 먹고 세 개를 먹고...

그러다 문득 날이 밝은 걸 깨달았지. 아이들이 학교 가는 소리가 들려왔네.

그 애들이 날 보더니 열매를 달라 소리치더군.

내가 던진 열매에 기뻐하는 아이들, 난 정말 행복했어.

그 열매들을 챙겨 집으로 가져왔지.

아내도 이처럼 행복해했네. 죽으려고 떠났지만 돌아오니 모두가 행복해진거야.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체리향기>에서

자살여행을 하던 '바디'로부터 자신의 자살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박제사 노인이 하는 말이다.

그 노인은 절망한 바디를 향해 어떠한 적극적인 설득도 하지 않는다.

부탁을 받고, 그러마고 얘기한다.

대신 그는 천천히 이야기한다.

 

 

"생각해봐요.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는 기쁨,

맑은 샘물에 얼굴을 씻는 상큼함,

보름달이 뜬 밤하늘의 아름다움,

그리고, 혀 끝에 감도는 달콤한 체리향기"

 

몇 일전 누군가가

나에게 '삶의 기쁨'이 무엇이냐고 스치듯 물었을 때,

'마약과 같은 것 아니냐고, 순간 순간 고통을 잊게 하는

자잘한 약효로 가까스로 연명하는' 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래 전 보았던 이 영화의 그 노인과 바디가 생각났다.

 

 

 

밤이 오고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 안에 눕는다.

조금은 긴장된 그의 얼굴 위로 푸른 달빛이 서린다.

아침이 오면, 그는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얻게 될까.

영화는 대답없이 막을 내린지만

 

 

 

 

내게 그러하듯 

질문했던 나의 친구에게도

혀끝에 감도는 달큰한 체리향기가

'야냥개'가 아닌 '연명의 이유'이기를

소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