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옷장 속 정리를 하는데 싸이렌이 울렸다.
현충일이다.
싸이렌이 울리면 여전히 공포심이 돋는 건,
'오포'에 대한 기억때문이다.
공안정치가 가장 best policy였던 그 시절,
가장 먼저 배운 사자성어가 '유비무환'이었으니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북한괴뢰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그 시절 시도때도 없이 우리는 오포소리를 듣고 오싹오싹해야했으니.
그리하여,
한참 성장할 때까지도 자주 꾸는 악몽이 있었으니
둘 다 나의 맨들맨들한 영혼에 각질을 만들어냈던 것들.
그 중 하나가 북한군이 쳐들어오는 꿈.
꿈 속에서 내가 주로 숨는 곳이 몇 곳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뒷뜰 장독대의 엄청 큰 간장독이었다.
꿈 속에서 죽어라고 뛰어가서 뚜껑을 열고 몸을 숨기는 순간
마지막 왼쪽 다리를 다 미처 못 집어넣는 바람에 들키고 마는 일이 반복되었다.
웃기는 건, 발각되어 북한군의 총에 맞으면서도
'아, 이건 꿈이야. 꿈이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을 했으니, 명백한 개꿈.
또 하나의 요새가 있었으니 이곳 또한 평소에
'이곳에 숨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거야'라고 나름 물색해 놓은 곳.
바로 도로와 붙어있는 논의 경사지.
높이가 달라서 생기는 그 경사지에 몸을 최소로해서 엎드리면 도로 위를 달리는
북한군의 트럭에 발각되지 않을 거라는 초딩의 계산은 가끔 성공적이기도 했다.
좀 더 쇤 후에 추가된 악몽은 시험보는 꿈이었다.
더 이상 시험의 공포에서 탈출한 어른이 된 후에도 자주 꾸는 꿈이었으니.
시험장소인 403강의실을 밤새 찾아 헤매다 날새는 꿈,
빼곡히 써서 낸 시험지가 나중에 알고보니 뒷면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꿈,
나만 몰랐는데 오늘부터 중간고사라는 꿈.
언젠가 한 친구에게 나의 반복되는 두 악몽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그에게 나의 요새를 발설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 역시 숨는 곳이 똑 같다는 것이었다.
아, 그 논둑 경사지.
아, 우리는 꿈에 똑 같은 곳에 똑 같이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벌벌 떨며
북한괴뢰군이 지나가는 트럭소리를 귓가로 들으며 납작 엎드려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두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했다.
아우슈비츄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커플처럼.
이제는 비로소
북한군도 안 무섭고, 시험에 대한 공포도 내 무의식에서 졸업을 했는지
그 두 꿈에서 벗어났다.
반복되는 어떤 악몽도 없다.
마음의 근력이 생겼다는 증거겠지만
다시 반복된다면 그 논둑 경사지에서 그 친구에게 똥침이라고 찔러봐야겠다.
"야, 임마. 여기서 뭐하냣. 꿈이다, 꿈."
악몽도 같이 꾸면 단편소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