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사랑하라, 희망없이
Tigerlily
2015. 4. 21. 10:02
비오는 월요일,
1교시 빈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첫 키스 같다.
그 느낌을 반추하며
아끼고 아껴가며 마신다.
고등학교 때 <님의 침묵>을 배우며
한용운 님은 할 짓 다한 '피딱까진 스님'이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그야말로 실제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뻔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실제 경험해 본 후에는
'오오, 우리 용운스님, 구라친 거 아니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에게는 '완료의 욕구'가 있다고한다.
끝까지 본 영화보다는
보다가 도중에 멈춘 영화의 줄거리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 어쩌고 운운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이다.
사랑하라, 희망없이, 마치 젊은 새잡이가
지주의 딸에게 자기의 높은 모자를 휙 벗어 날려보내듯이
그리하여 감금되었던 종달새들이 도망쳐 날아오르게 하라
그녀가 말 타고 지나갈 때 그 머리 주위에서 노래하도록
소설가 윤영수씨가 쓴 소설의 제목과 동일한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쓴 <사랑하라, 희망없이>라는 시이다.
'희망없이'의 영어표현이 'hopelessly'가 아니라 'without hope'이다.
속수무책으로가 아니라 기대를 가지지 말고이다.
가당치도 않은 상대인 지주의 딸을 사랑하는
보잘것 없는 젊은이의 사랑방식이 참 아름답다.
비오는 월요일 첫 빈 시간에 마시는 커피,
아무리 아껴 마셔도 머그잔은 이내 바닥이 보인다.
그 나머지는 젊은 새잡이처럼
모자를 높이 날려보내는 일,
그 밖에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