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코는 없다
최윤의 단편 <하나코는 없다>의 하나코는 일종의 허상이다.
남고 동창들로 이루어진 이미 결혼한 그들의 모임에
언젠부턴가 가끔 동석하게 되어 같은 무리가 된 하나코는
작은 키에 보잘 것 없었으나 유난히 예쁜 코을 가진 묘한 매력의 여자.
소설은 베네치아로 업무상 출장을 떠난 남자 주인공이
그곳 어딘가에 하나코가 있다는 소문을 기억하고
그녀를 찾으려 애쓰나, 결국 아무 곳에서도 찾지 못하고 만다는 얘기가 큰 줄기이다.
어떤 우연한 사건 이후
그들의 곁에서 사라진 하나코의 존재는 그들 모두에게,
과연, 하나코가 존재하기는 했었는가하는 근원적 의문까지 가지게 한다.
"그리고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구질하면서도 내밀한 자신의 얘기를 그녀에게 하는 것이었다.
몇 살 때 자위를 시작했다든지,
자신이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괴로운 습관 같은 것,
또는 하나코도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에 대한 숨겨진 불만 같은 것까지도.
그녀는 그 얘기들을 고개를 약간 갸웃이 쳐들고 듣는다.
얘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그녀는 결코 그의 얘기를 중간에서 끊는 법이 없었다.
그녀처럼 집중해서 그의 시시껄렁한 얘기를 들어준 여자를 그는 알지 못했다.
하나코와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 없었다.
하나코와는 일이 덧나도 별 두려움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이 쳐들고 정성껏 내 말을 들어주면서도
덧날 일도, 자존심을 챙길 필요도 없는 관계,
나뭇잎처럼 그렇게 아늑한 관계,
꿈꾸어 봄 직한 관계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다시 하나코를 찾을 수 없었듯이
그저 판타지일 뿐이다.
그 누구의 말처럼, 깊게 관여된 관계가 아니라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냥한 말을 던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사랑만 없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랑만 없다면.
때로는 사랑이 관계를 척박하게 만드는
주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