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카.형.같은

Tigerlily 2015. 4. 10. 13:37

 

 

 

 

급기야 책의 커버를 쌌다.

쪽팔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

작년에 읽기 시작한 겨우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이미 학창시절 마쳤어야할 이 놈의 도스도옙스키를,

아직도 마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놓질 못하고 빌빌 대고 있다.

참 이상하다.

5권, 10여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을 읽을 때도 경험하지 못한

진도의 뻑뻑함이다.

 

 

카.형.년을 마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읽고 싶은 책들은 여전히 많이 눈에 띄어 

땡기는 족족 사서 사이 사이 읽다보니 더 미뤄지고 있다.

다른 책들을 읽는 사이에도

'빨리 그 년부터 해치워야하는데'라는 생각은

항상 머릿속 언저리에 있어서

아름다운 그년을 두고 서방질을 하는, 딱 그 마음이었다.

이러다가

'나는 평생에 걸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노라'고

그럴듯하게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는 저마다의 생로병사의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도중에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서먹해질 수가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려 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자연소멸이 될까.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그 관계에서 둘 중 하나가 좋아하는 척하며 무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나의 애타는 노력은 단지 내가 부족했거나 나쁜 사람이 아님을,

 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101쪽>

 

 

 

카.형.의 사이에 읽었던 임경선의 글귀를 읽다가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졸라 뻑뻑하기 그지 없는, 길을 막고 있는 

카.형.같은 존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흠칫했다.

아, 흥칫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