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부끄러움이 밀려오면

Tigerlily 2025. 5. 12. 11:35

 

 

고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양초를 이용한 미술작품을 한다고

어떤 종류가 되었든 양초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가장 일반적인 하얀색 양초- 정전이 되었을 때 불을 켜거나

굿판에서 쌀 함박지에 꽂던(꽂는 것을 보았던)-를 가져갔다.

팔복동에서 살던 내 짝꿍 정천숙이라는 친구는 

색색깔의 너무나도 이쁜  가느다랗고 작은 초를 대여섯 개 꺼내놨다.

'어머나, 무슨 초가 이렇게 이쁜게 다 있어? 너무 귀엽다.'

'이걸 다 몰라? 생일케익에 꽂는 초잖아.'

나의 얼굴은 화끈달아올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우리 집에는 생일케잌이라는 것이

등장해 본적이 없었다.

본점통에 제과점 하나도 없는 동산촌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생일이래야 미역국에 귤 한 봉다리, 혹은 마른 호박 듬뿍 넣은

호박떡이 최고의 호사였던 것이다.

이 부끄러움의 기억은 봉숭아 꽃물처럼 마음속에 붉고도 야물게 물들어 있어서

오래도록 빠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한 참 자란 후에야

남편에게 겨우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시아버지를 모시고 동네의 치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시아버지가 치료를 받으러 들어간 사이 

무료해진 나는 병원 실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진료실 입구 벽에 붙어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발견하고

자판을 두드려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싸이트를 찾았다.

나의 계정에 접속하여 몇 명이나 방문했나 확인하려는 순간 간호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진료용 컴퓨터를 만지면 어떡해요!.'라며 제지했다.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50이 다 된 아줌마가 겨우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SNS에 접속하려고

진료용 컴퓨터에 접근하는 모냥새가 얼마나 쪽팔리는 저급한 행동이었는지

그 이후로도 돌이켜 생각해 볼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장난기 가득한 나의 지인은 일생 머릿속에 성적인 환상이 가득 찬 자신의 기질상

치매의 공격을 받았을 때 통제되지 않은 입에서

온갖 음흉하고 외설스러운 자백과 욕망, 기억이 마구 쏟아져 나올까 가장 두렵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무작위로 선발된 100명에게 '모든 것이 들통났으니 오늘밤 안으로 이 도시를 떠나 피신해 있으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삼분의 이 이상이 그 다음날 그 도시에서 사라졌다는 말도 있다.

 

말하여질 수 있다는 것은 극복되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 글의 형태로라도 나발을 불 수 있는 기억들은 이미 마음에서 가벼워진 것들이고

극복이라고 할 필요도 없을만큼 부끄러움의 농도가 옅은, 별 것 아닌 기억들이다.

깜도 안되는 쪽팔림의 기억을 폭로함으로써

'내게 부끄러운 기억은 겨우 이 정도?' 라며 순수를 가장함으로써 다시 위선을 부리는 얕은 술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고백되지 못한 단단하고도 시퍼런 멍들이 

말하여질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웅크리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나만 아는 비밀로 박제되어 결코 재상영되지 못할 필모그래피로 의식의 지하창고에

숨겨둔 채 삶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영화 《화양연화》 속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의 한 구석,

작은 돌구멍에 비밀을 털어놓고 봉인해 버린 것처럼.

 

가끔,

가능한 일이라면 인생의 어느 싯점으로 되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수능만점의 정답표를 몰래 미리 받거나 억대 상금의 로또 번호를 미리 알게 된 것처럼

순간 가슴이 폭발하듯 설레는 질문이다.

'밀려써서 꼴찌 했는데 이번 시험 무효래.'

 

우리 두 아들의 인생길을 지금보다 쾌적하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도록 재편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내 나이 삼십대 초반의 어느 날로 빽 투 더 패스트 하고 싶기도 하다.

때로 재상영되지 못할 필모그래피 속의 영화를 찍기 이전의 어느 날로 되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결론은 지금 이대로! 이다.

그 어느 시점으로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성장이란 상처 난 부위 이상의 길이를 넘지 못한다기에

상처와 멍으로 인해 부피 자람과 길이 자람이 충분치 못해 땅딸막하고 윤기 부족한 모습이 되었지만

내 삶의 발자국에 헛됨이란 없었으리라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심의 무거운 고개와 고민의 잠 못 드는 날들로 이루어진

내 인격과 품성의 고된 선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아주 잘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을 잘 떠나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지난 날의 내 모습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이 밀려오면

머리를 털어 생각에서 벗어나려하기 보다

ㄱㅏ장 이쁜 미소로 배웅을 해 주고 싶다.

 

그 때의 나도 귀한 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