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초록색 잉크로
Tigerlily
2025. 3. 17. 08:22
- 뭔가 주저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건 내가 말해줄게", "그건 이거야"라고 확언하기보다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가요.
온 종일 이슬비가 내린다.
무얼해도 주저할 것 같은 날이다.
망설여지는 날이다.
'사랑은 한 번 덜 망설임'이라는 어떤 이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제법 적절하여, 뜨지도 않은 해가 질 무렵에야 커피를 한 잔 타서 탁자에 앉았다.
아껴 마셔야지.
- 정말 그랬다. 동생인 앨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지금 그 애는 이 세상에 없다.
<호밀밭의 파숫꾼>에서 콜필드의 죽은 동생 엘리에 대한 회상장면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금세 젖어버리는 날들과
쨍쨍 해가 나도 마르지 않는 축축한 마음
어디에 시를 적어넣어도 이내 글씨는 번져버려 읽을 수 없겠지만
지금은 같은 세상에 없는 앨리가 그랬듯
나의 야구 장갑 곳곳에, 젖어서 자꾸만 찢어지는 시간 위에
시를 적어 보는거야
한 없이 쪽팔려져서, 다 모두 다 후회하고 싶어지는 날에
장갑을 펴서 읽어보는거지
관객들은 내가 작전을 짜는 줄 알겠지
우후, 칫
나는 시.를. 읽는다규~~
니들이 몰래 읽는 시 맛을 알아?
주저하며, 망설이며 걷다보면
자주색 꽃 곱게 피는 달개비꽃도 보게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