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의 신간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소설 속에는
학기 초 자기 소개를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의 형식으로 하게 하는 담임교사가 등장한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힐 거고. 그럼 나머지 네 개는
자연스레 참이 되겠지? 선생님 말 이해했어?"
나 역시 학기초 첫 수업 시간에 나의 소개를 하면서 써먹는 방식이어서 스틸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시간이니 당연히 영어 문장이지만 말이다.
True or False (중학년 1학년 대상)
1. I’ve been teaching for over 30 years at Kijeon Middle School.
2. I have been to Hawaii.
3. I published my own books.
4. I like extrem sports like bunjee jump and sky diving.
5. I have two sons.
어쨌든,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을 한 번 해볼까?(으른 대상)
1. 나는 퇴직을 하면 옷가게를 할 것이다.
2. 나는 '모든 것이 들통났으니 어서 피하시오.'라는 발신자 익명의 문자를 받게 되면
호다닥 보따리를 쌀 것 같다.
3. 내가 만약 이혼을 한다면 '나는'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4. 나는 신삥 교사가 아침 인사를 허술하게 하면 3일 안에 소심한 복수를 한다.
5. 나는 우리 작은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답은
어쨌든, 3번이 정답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만약에 이혼을 한다면 '나는'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라는 문항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이 아니란 얘기다.
부부싸움의 원인이야 집안마다 천차만별이고 우리집 역시 비슷하게 다양하지만
우리 집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단골 소재가 있다.
그것은 나의 남편의 초보적인 불량한 언어습관 때문이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하도 이사를 많이 다니기도 했고
운동화나 연필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탓에
한글과 구구단을 6학년 때에야 떼었다고 하니 그로 인한
'기초학력의 부재'가 평생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가끔 남편이 목사님과 같은 다소 예의를 갖춰야 할 누군가와 통화를 앞두고 있으면
나는 집중 연습을 시킨다.
"세 번씩 반복해 봐, 저.는. /목사님께.서."
"나는이면 어쩌고, 목사님이면 어쪄간디. 알아듣기만 하먼 돼지."
"각시니까 당신 쪽팔리지 말라고 알려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
"지난번 교회에서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나이가 많잖아요'가 뭐야."
"우리 동네 임실 이도리에서는 다들 그렇게 써. 아무도 딴지 안 걸어."
교회 우리 구역의 구역장을 맡고 있어서
한 달에 두 번은 대 여섯 명이 모여 앉아 성경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
남편은 겁나 신실하여서 구역장을 맡고 있어서 모임의 사회를 맡아 이끌어 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입에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나는'과 '집사님이'와 '밥'과 '내가'의 문턱에 걸려서
말씀에 도통 집중하지를 못한다.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과 마음을 삭이려면 한참이 걸린다.
뽀뽀를 하려다가도 '나는'이 떠오르면 성욕이 뚝 떨어진다.
맞다.
그러니,
내가 만약 이혼을 한다면 '나는'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