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나의 시를 읽어 보았다.
몇 명 오지도 않는 나의 블로그,
가끔 눌러보는 방문통계를 통해 읽혀진 흔적이 있는 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몇 일 전, 아주 오래 전에 쓴 시 한 편을 누군가 눌러서 읽은 흔적이 있었다.
산님이, 산딸기 같은 이름이다.
우리 엄마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던, 열 대여섯 살 때 죽었다는 이모란다.
잊혀졌던 나의 시를 나도 읽어봤다. 저릿하고도 하염없는 가을밤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슴 속을 걸어 지나는 것이라는데
그 사람은 나의 가슴 속을 어떤 발걸음으로 지나갔을까.
<산님이>
.조선희.
청갈스러워 막내딸네 우리 집도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팔순 보는 우리 엄마
사위가 먼 여행 간 핑계로 가까스로 우리 집 오신 밤
초저녁잠도 속여 넘기고 참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용정리 따박따박 대추나무 억세던 어린 시절 이야기
솜이불처럼 풀으신다
당신 낳고 삼일 만에 돌아가신 엄마의 엄마는
엄마와 쏙 닮아, 엄마보고 싶으면 거울 보면 된단 얘기 동네 아낙들 해주셨다지
숟가락 숫자 줄이기 위해 장가 간 오빠 집에 보내져
개밥 그릇 속 도토리처럼 덜컹거리던 어느 밤
산님이 산님이 언니, 점례야 점례야 부르며 고개를 넘어갔다지
발톱이 빠지도록 밭둑을 허방 짓던 밤
얼굴도 기억 없는 엄마보다 엄마 같던 산님이 언니, 그만
하얗게 덮여진 채 지게 위해 얹혀 멀어져갔다지
주구장천 욕을 달고 살던 올케언니 피해
일찌감치 혼사 다리 이리저리 놓던 시절
그 지아비 우리 아버지, 반쯤 먹은 가는귀,
그 막막한 착실함에 그만 마음을 놓았다지
텔레비전 속에서는
숙종과 동이가 비 오는 주막에서 깊은 사랑 이루어가고
엄마의 이야기는 가마골 비탈길을 넘어가지 못하고
허방허방 잠 속으로 미끄러져간다
줄줄이 육 남매, 그 끝의 천한 탯기
몇 년 묵은 간장에도, 뽕나무 뿌리 삶은 독한 물에도
질기게 당신 탯줄 놓지 않고 살아남은 막내딸은
이 밤 하릴없이 손톱만 잘라내고 또 잘라낸다
할인마트에서 떨이로 팔면 딱 좋을
한 없이 두리번 거리는 마음 하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산님이 이모가 엄마의 따스한 잠 속으로 가만히 나를 불러내어
그만 그만 마른 품에 서로를 꼭 안아주기를 꿈꿔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