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지금 읽고 있는 책 49페이지

Tigerlily 2024. 11. 18. 16:19

 

 

인스타를 뒤적거리다가

팔로잉 친구인 김영하 작가가 올려놓은 공지가 눈에 띄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49 페이지의 문장 하나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제목과 저자는 빼고요.'

 

재미난 이벤트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을 하늘을 우산 삼아 세상의 쓸쓸함을 비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헌 책방에서 구입한 책의 간지에 적혀있던

책을 선물하는 이의 몇 줄의 작은 바램의 글을 만나며

첫눈을 밟듯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어쩌면 잃어본 적이 없어서 저러는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고양이도 해주는 위로를 왜 사람은 못해주는 걸까.

 

서로가 바빠지면서 뜸한 모임이 되었지만 괜찮다.

 

용기 내서 말했던 건 행복이라 할만했다.

 

생물학이나 유전공학 기본 연구에 널리 쓰이는

'예쁜 꼬마선충'의 경우, 먹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척박해져

위기를 느끼면 모체가 '수컷'으로 태어나는 알을 일부 생산한단다.

 

그런데 존경하는 친구,

자네는 도대체 해탈의 길을 걷지 않을 작정인 거야?

주저하기만 하고 기다리기만 할 셈이야?

 

다 한 조각씩이다.

괴로운 마음도 미운 마음도 

외로운 마음도 보고픈 마음도.

무엇 하나가 나를 온통 채우고 뿌리째 흔드는 일은 없다.

 

엄마는 옆방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제대로 튀기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휴대폰의 카톡 업데이트한 프로필 목록을 클릭하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대학 때 같은 과 예비역이었고 나의 남편과 동갑이었던 한 형의 프사에

자신의 별세를 알리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유족 중의 한 명이 프로필 사진을 통해 소식을 알리고 있던 거였다.

아직은 젊다, 할 만한 나이에 소천 소식도 놀라웠지만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알리는 형상이어서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함을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소설 같았다.

 

모름지기 책이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내리치는 도끼와 같아야한다고 했던가.

어떤 책의 49페이지보다 안타깝게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