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코모레비

Tigerlily 2024. 8. 13. 15:49

 

 

'코모레비'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이르는 일본말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한 번 스치듯 나오는 어여쁜 어휘다.

영화 속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은

반복되지만 충만하고 평범하지만 반짝인다.

'정갈하게 쓴 오래된 일기장, 그 안에 담긴 삶의 가치'라고 한 줄 평을 쓴 사람도 있고

'나른한 평온'이라고 쓴 평론가도 있다.

어쨌든, 올 해 본 영화 중에서 내겐 최고다.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소롯길의 고요' 

내가 쓴 한 줄 평이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고개 들어 일부러 바라보는 이의 눈에만 들어오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햇살은 잎사귀가 무성할수록 상대적으로 환하게 보이는 밝음이다.

 

가수 장기하의 노래 '느리게 걷자'라는 노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식을 줄 모르는 열기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혔던 이 계절처럼.

무겁고도 막막한 나의 여름이었다.

 

어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종주먹을 들이대며 협박하고 위협하는 삶의 낱낱을 감당해 내거나

빨개진 눈알로 두 손을 바짝 귀에 붙여 들고서

항복, 항복을 뱉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을 했다.

새벽녘에는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야 할 만큼 

이 계절의 열기도 한 풀 꺾여가고 있다.

앞 뒤 문맥 없는 어린아이의 생떼처럼

애원에 가까웠던 나의 기도도 차츰 문장을 이루어가거나 심지어 뜸해져가고 있다.

 

잎사귀가 무성하여 짙은 어둠을 만들어야만

그 틈새로

눈이 부실만큼의 빛나는 햇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절망과 낙담의  풀썩 주저앉음 뒤의

작은 회복 속에서 마주하는

지리멸렬할 만큼의 반복적인 일상의 햇살이

얼마나 눈이 부신 것인지 비로소 실눈을 뜨며 바라보게 된다.

 

"채찍을 든 도깨비 같은

시뻘건 아저씨가 눈을 부라려도

아, 적어도 나는 니게 뭐라 안 해

아 그저 아 잠시 앉았다 다시 가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