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광주집

Tigerlily 2024. 3. 13. 14:06

 

 

신학기의 독특하고도 재미난 풍경 중의 하나는

교정에서 무리 지어있는 학생들이 교사들을 향하여 과도하게 아는 체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점심 급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긴 줄로 서 있는 학생들의 곁을 지날라치면 아이들은 한껏 상기되어

ㄱㅓ으 ㅣ 입덕한 스타들을 향한 환호성처럼 손까지 흔들며 교사들의 이름을 부른다.

"써니샘, 몇 학년 가르치세요? 우리 또 가르치시면 안 돼요?"

지난해 나로부터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목소리이다.

 

 

봄, 3월이 주는 기분 좋은 정경이다.

"오오, 소윤이 안녕? 준환이 반갑다! 뉴 담탱이는 뉘규?"

나 역시 발랑 까진 봄처녀처럼 다소 과하게 호응해 준다.

내 생애 이런 환호와 인기가 흔하겠는가.

메뚜기도 한 철이다.

그들의 넘치는 다정함도 3월의 중순을 넘어가면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딱 한, 두 주 간 새 교실의 새로 구성된 교우 관계 속에서의 새콤한 흥분과

학년이 바뀌면서 교사들에 대해서 탈색되고 걸러져 다행스럽게 겨우 남겨진 좋은 기억들 덕분일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도 학교생활 제법 잘하고 있다.'라는 일종의 귀여운 과시에서 나온 다정함일 가능성도 높다.

정말 내가 인기 있는 교사인가 보다,라는 착각을 하면 안 된다.

어쨌든 딱 이 계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호사이다.

서로 잘 버텨왔음을 확인하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들썩이는 교정에서의 호사와 함께 딱 이 계절에만 어울리는 혀의 감각이 있으니

이 역시 만만찮은 한 해 살이의 시작에 대한 나만의 리츄얼이다. 

정초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집집마다 돌며 꽹과리, 북, 장구를 치면서 요사스러운 악귀를 누르고 물리치는 지신밟기를 했듯 이 맘 때쯤이 되면 9인승 카니발을 타고 우리는 부안 광주집으로 향하곤 했다.

신학기의 긴장과 잡무로 녹초가 된 몸을 끌고 격포에서 곰소로 넘어가는 언덕 날망에 위치한 허름한 

광주집에 도착하면 잘 익은 양파김치를 곁들인 쭈꾸미 냉이 샤부샤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대친 손바닥만 한 냉이와 쭈꾸미를 와사비를 진하게 푼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쌓인 피로까지 확 풀릴만큼 눈물이 찔끔 나온다. 나중까지 익힌 포슬포슬한 하얀 쌀밥같은 쭈꾸미 알과 딴딴히 익은 먹물통까지 먹고 난 다음, 거나해진 눈빛으로 솔섬 근처로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것 하나 먹겠다고 피곤한 몸 이끌고 두 시간에 가까운 거리의 부안까지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돌아오는 촌스러운 짓거리를 왜 하는가 싶으면서도 

이렇다 할 별 다른 새로운 꿈은 없지만

아직 우리 괜찮게 살고 있고, 그동안도 그럭저럭 잘 버텨왔음을 서로 다독이는 의례인 듯도 싶었다.

 

이제는 사실,

으쌰으쌰 하던 쭈꾸미 승합차 멤버들도 거의 다 퇴직을 해서 나 홀로 남았고

해안가 날망의 허름하던 광주집도 도로 정비를 하며 어디론가 이사를 해서 이제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어쨌든

올 해도 그 봄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