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어렸을 적, 부엌의 나무 찬장문을 열면
찬장의 왼쪽 구석 깊숙한 곳에서는 엄마가 던져놓은 동전이나 지폐가 만져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좋아하는 흑설탕이 담겨있는 봉다리가 있었다.
간식거리래야 장독대를 삥 둘러 심겨진 단수수를 잘라 단물을 빨아먹는 게 고작이었던 시절
놀다가 심심할 때면, 부엌으로 달려가 흑설탕을 한 숟가락씩 퍼먹곤 했었다.
오일마다 열리던 삼례장에서 엄마가 사오셨던 그것은
진한 밤색을 띠던 눅진한 단맛이 은근했는데
입구가 야무지게 봉해지지 않아서인지 약간의 습기가 배어있어서
지금의 하얀설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풍미가 있었다.
엄마가 설탕을 한 근을 사 왔네, 두 근을 사 왔네, 하실 적마다
1킬로라든지, 한 봉다리라든지의 단위보다
'근'이라는 단어가 흑설탕의 맛을 담박에 그럴듯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사의 정체 모를 마약 한 스푼 같이 느껴졌었다.
요즘도 마트의 주차장 한 구석, 상설장터처럼 펼쳐진 곳에서 간혹 파는
셈베과자라든가, 강정에 나의 눈이 끌리는 이유는 옛날 맛에 대한 향수못지 않게
그것을 담아주는 황토색 봉투라든가, '근으로 파는' 것에 대한 나만의 편파적인 도량형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킬로나 그램으로 사는 것보다 '근'으로 사면 훨씬 맛나다.
흑설탕만이 아니다.
여름날의 과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이야 마트나 시장을 막론하고 거의 가 다 킬로그램이나 박스 단위로 팔지만
허물어진 문중의 잔해를 붙들듯 어쩌다가 여전히 한 관에 얼마, 하는 옛 단위를 사용하는 가게를 만나기도 한다.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 관으로 살 때, 비로소 살림을 아는 손 큰 아낙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들큰한 과일향이 몇 배가 가미된 듯하다.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구절,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가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
의 '말'이 'horse'가 아니라 예전 곡물을 담아 재던 그 물건임을 알고 깜짝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푸른 눈의 이방인이 아니라 새마을 모자를 눌러쓴 옆집 구씨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와락 들었었다.
근이 되었든 킬로그램이 되었든
봉다리에 담아 저울에 달든, 말에 담아 눈금으로 측정하든
계측의 도구만 다를 뿐 그 안에 담기는 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게 그거다.
그럼에도 그게 그게 아니라는 까탈스러움이 각자 몫의 아름다움이 되기도 한다.
납작한 언어와 감정들에 부피와 질감을 만들어낸다.
지난 주말 동안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이를 어쩌나!
부끄럽게도 남이 잘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마음이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다.
연말연초가 되면 들려오는 지인 자녀들의 취업 소식, 임용고시 합격 소식에
부풀어 오른 부러움은 그렇게 키워내지 못한 자책으로 이어져 극복하는 데 며칠이 걸리곤 했다.
올 해의 질투가 더 시퍼렇던 이유는 그 대상이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남이 알까 부끄러운 가슴앓이다.
가까운 벗이 잘 되는 것은 내게도 기쁜 일이고 손뼉 쳐 줘야 할 일이 아니던가, 아니던가, 아.니.었.다.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린 후
나의 생은 마치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독한 감기의 끝, 약기운과 함께 더운 숨을 이불속에서 삭히고 난 다음의 개운함처럼
질투뿐만 아니라 그 보다 훨씬 치명적인 자책의 무거운 이불 밖으로 명쾌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의 용량의 형편없음을 확인하면서였다.
한 말은 그만두고 한 관도 되지 못하는,
겨우 한 근이나 될까 말까 한 내 마음의 깊이와 넓이와 무게를 낱낱이 재확인하며 한숨을 쉬는 시간이었다.
흑설탕을 담던 한 근, 두 근의 단위나
참외, 사과의 한 관, 두 관의 도량형에 대한 편파적 향수의 여전함과 마찬가지로
여전한 게 또 하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나인걸, 내 꼬라지인걸!
질투는 나의 유일한 힘인걸.
- 내가 좋아하는 '꿈'이라는 노래를 태연이 리메이크해서 깜짝 반가웠다
: 드라마는 못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