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용지면
근무 중에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남편으로부터 그날, 상기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 역시 온갖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장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당신에게 유산을 남겼나 봐.
완주군청에서 우편물이 하나 왔네.
용지면에 당신 이름으로 상속되어진 땅이 있다고.
증여자는 장모님 이름으로 되어있어.
막내 고생했다고 몰래 유산으로 챙겨놨나 봐."
그럴 리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고, 뭔가 잘못되었을 거라고
목소리로 손사래를 치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아는 한, 엄마 이름으로 된 땅뙈기는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산정리를 할 때 당연하다는 듯 엄마는
남겨진 집과 몇 마지기의 논, 선산 역할을 하는 야산의 밭을 몽땅 큰 오빠 명의로 바꿔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이미 40여 년이나 흘렀고 지난여름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그 묵직한 세월은 뭔가 변수를 비밀로 묶어두기에는 지나치게 길었다.
혹여 엄마에게 재주 좋게 몰래 숨겨둔 땅이 있었다 손 치더라도 줄줄이 여섯 남매 홀로 키워 혼사시키며
진즉 팔아 처분했을 터였다. 묻어둘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는 재리에 깜깜한 분이셨다.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땅이네, 돈이네, 다행히도 관심이 없으셨던 분이셨다.
일과에 지친 나른한 몸을 퇴근길 운전석에 밀어 넣다 보면
마음은 더 낭창낭창해져 그 시간마다 엄마께 안부전화를 하던 습관이 그리움으로 이어져
차 안에서 혼자 찔끔대던 그즈음의 심사가 그날은 폭풍 눈물로 쏟아졌다.
막내 고생했다고 몰래 유산을 챙겨놨을지도 모른다는 농담 섞인 남편의 말이 실낱같이 라도 믿긴 까닭일까.
오랜 치매의 세월로 인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엄마가
'우리 막내, 내가 너의 수고를 알지.' 라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떠나서, 사실여부를 떠나서
증여자로 쓰인 엄마의 이름, 상속자로 올라온 내 이름의 사무적 공지의 우편물이
천국에서 내게 보내온 엄마의 손편지 같았다.
빨개진 눈으로 집안에 들어섰을 때,
남편은 이미 시청, 군청에서 일하다 퇴직한 자신의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그 우편물에 대한 낱낱의 조사를 끝낸 후였다.
'별 것 아니라네. 알아보니 도로로 편입되어 있는 조그만 땅 이래. 팔아봤자 몇 푼 되지도 않는대.
그리고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형제간 모두에게 우편물이 갔을 거래. 상속자가 여섯 명인 거야.'
아닌 게 아니라 가족 단톡방에 하나 둘 그날 받은 우편물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잠깐동안이나마 나와 유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허우적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톡방에 고개를 내민 오빠들과 언니는 그 땅이 부동산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서로 소유권을 양보하는 등의 웃음과 농담으로 오후 내내 내심 들떴던 마음을 풀어내었다.
그럼에도 해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궁금증의 방향은 바로 그 땅의 소재지에 대한 것이었다.
완주군 용지면.
그곳은 우리 집 혹은 엄마의 친정집, 그 무엇과도 관계가 없는 생판 낯선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논이 있던 정암리 가마골이라든지, 신작로 양옆의 논이 있던 반월리라든지, 엄마의 친정동네 용정리라든지, 하다못해 고모들이 많이 살던 김제라면 모를까, 엄마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듯한 그곳.
왜 하필 그곳일까. 엄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곳일까.
설왕설래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만 단톡방에 수북하게 물음표로 남기며 하나 둘 굿밤을 이모티콘으로 남기며 퇴장을 할 즈음 전화 한 통이 왔다. 방금 단톡방에 있던 부천 둘째 오빠였다.
"선희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한 때 가까이 지냈던 분이 한 분 계셨어.
그냥 친한 남자친구인가 보다 했는데 내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거든.
60대 중반 일 때인가 엄마가 큰 수술을 받으셨잖아. 담석증이 심해서 간 절제수술을 받으신 것 너도 기억하지?
그때 입원해 계신 병실에 병문안을 오셨더라고. 근데 혼자 오신 게 아니었어. 그 집 큰 아들을 데리고 같이 오셨더라니까.
그 정도라면 그냥 단순한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혹시 용지면의 그 땅이 그 분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단편소설 같았다.
엄마가 주인공인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상상에 가까운 짐작일 뿐이라며 오빠는 조심스레 얘기를 해 줬지만 1%의 개연성이라 할지라도
엄마의 삶에 연둣빛 황홀의 물감이 입혀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사랑이 있었어.
엄마에게도 설레던 날들이 있었어.
옷자락을 숨기며 난생처음 짧은 행복에 몸 둘 바를 몰랐던 날이 있었어.
엄마를 바라보며 항상 내 가슴이 저렸던 이유는 '엄마가 행복하지 않을까 봐'였다.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마음이 아픈 이유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그렇기에 오빠가 들려준 단편소설은
목메게 자신의 근원을 찾아 헤매던 빨강머리 앤이 자신이 처음 맡겨진 고아원에서 드디어 엄마의 흔적인 그림책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이 축복받은 인생이었음을 확인했던 순간처럼
4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외롭고도 고단하기만 했던 엄마의 삶이 축복으로 보상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 파벨만스 》는 감독의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제작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엄마가 아빠의 가장 가까웠던 조력자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하는 강력한 에피소드가 소재가 되는 영화였기에 부모의 삶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밤 오빠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비밀로 숨겨놓고 싶지 않은 빛나는 글감이었고 소문내고싶은 영화의 소재였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서 우리 엄마는 행복했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쯤 후에,
장성에 사는 셋째 오빠의 집에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이 있었다.
남원에서 면장일을 해서 그쪽 일에 밝은 언니를 통해 한 때 가치 없는 주인 없는 땅들을 이름이 비슷한 사람 중, 생년월일이 얼추 맞는 사람에게 대충 소유주로 처리해 버리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음으로써 엄마의 그 땅의 미스터리는 허망하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팩트가 뭐가 중요한가.
우리 엄마에게도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몇 마지기 땅을 상속받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