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달갑게 만나며
자유연애주의자, 혹은 세칭 바람둥이들이 내세우는 주장 가운데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매력)이 다 다른데 어떻게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가, 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앞세운다.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은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만 전부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공유하고 있는 많은 부분이 아니라 공유하지 않은 아주 작은 부분이 개체 간의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성격, 그 사람의 정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그 차이 속에 매력이 잠겨 있다.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고유하고 특별하므로
모든 사람을 고유하고 특별하게 대해야 한다. 유일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사람의 매력은 한 줄로 순서를 매겨 세울 수 없고, 비교 불가능하다.
사람(의 매력)이 다르므로 연애도 다르다.
한 개인을 전체의 일부로 간주하는 대신 유일한 존재로 바라보며 고유한 특성을 발견해주고
그것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연애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자유연애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 . .
형배는 물었다. 그러니까 바람을 피우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존중해주는 행위라는 뜻이야?
바람둥이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뜻이야?
바람둥이야말로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뜻이야?
준호는, 설명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 뜻이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차이에서 나오는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라고 덧붙였다.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반문했다. 혹시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욕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른 누군가의 매력이 아니라 들끓는 너의 욕망이 네가 말하는 사랑의 시작 아냐?
네가 욕망하는 것이 여럿이어서, 그걸 욕심껏 다 충족시키려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는 거 아냐?
연애 대상자들의 인격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쾌락을 존중해서 애인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거 아냐?
네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애 대상자들을 이용하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거 아냐?
-이승우, 《사랑의 생애》, 69, 75쪽-
-숙소, 00리조트
-테라로사 서귀포점
제주도의 나흘 째 밤, 늦게 마신 커피 탓에 잠이 안 와서 새벽 3시까지 책을 읽었다.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람이라는 생각은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속설이라고
자신의 바람기를 포장하는 준호의 말을 읽으며
내가 알았던 한 그럴듯한 바람둥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쨌든,
자신이 정의한 방식대로, 자신이 만든 규범대로
스스로와 합의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지.
그 누구든
자신을 달갑게 만나며
잠잠히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