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을 부르는 방식
자기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딱딱하게 이어지던 대화 끝에
여자 후배의 입술 사이로 무심코
튀어나온 자기, 어
여자후배는 잠시 당황하다
들고 온 보험 서류를 내밀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한순간 잔뜩 긴장하고 듣던 나를
맥없이 무장해체시켜버린 자기,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무 때고
꽃잎에 이슬이 매달리듯
혀끝에 자기라는 말이 촉촉이 매달려 있는가
주책이지 뭐야, 한 번은 어머니하고 얘기할 때도 그랬어
꽃집 앞에 내 다논 화분을 보고도
자기, 참 예쁘다
중얼거리다가 혼자서 얼마나 무안했게
나는 망설이던 보험을 들기로 한다
그것도 아주 종신보험을 들기로 한다
자기, 사랑에 빠진 말속에
손택수의 시 <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내가 '여보'라고 부르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언니를 삼았다느니,
누구의 에스 동생이라느니 따위의 비윗장 좋은 관계 맺음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종업원을 향하여 서슴없이 이모, 삼촌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의 넉살조차
신기하게 바라보는 질 낮은 사회성의 내겐 의외의 예외적 관계이다.
그 관계의 시작도 바로 제주도에서였다.
몇 년 전 나의 친구들 예닐곱 명은 엉겁결에 떼거지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친구 일심이의 자랑에서 시작되었다.
자랑인 듯 아닌 듯, 의리인듯 아닌듯, 정도 많고 뻥도 많은 일심이가 그날도 자랑을 펼쳐놨다.
머지않아 송천동 35사단이 타지로 이전하면 자기네가 대박이 난다고.
좋겠다 가시내, 승질나 죽겄네, 자랑만 하지 말고 한 턱 내라, 몇 십억 중에 5백만 내라, 껌값이네 뭐,
우리 일심이 덕에 단체로 제주도 좀 가보자,
그녀의 자랑질에 빈정이 상한 이빨 센 두세 명의 친구들이 농담 삼아 내놓은 제안이 실제가 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엉겁결에 제주도에 왔다.
오십대 초반의 무서울 것 없는 아줌마들 한 무더기를 싣고 다니던 봉고차 기사는
삼박사일 기가 빨려 너덜너덜해졌고
밤마다 숙소에서 우리는 일심이 만세, 일심이 땡큐를 외치며 건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알콜과 분위기에 한껏 업이 되어 옆에 앉아있는 경애에게 이빠이 꼬인 혀로
여보(여보세요:hey, 안 마시고 뭐하세요)인지, 여보(자기야: honey, 나 기분 겁나 좋아)인지를
연거푸 불러댔던 것이다.
그날 밤의 주사 덕분에 경애와 나는 서로를 '우리 여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관계의 친밀성을 따져보자면 경애와 나는 절친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제주도 여행 이후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여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무척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호칭에 어울리는 친근함이 부가적으로 더해진 것이다.
말이 가진 힘이고 주술적인 능력이다.
-비자림 again, 홍균이랑
-함덕 해수욕장
내가 당신을 부르는 방식이 당신을 그리는 물감의 농도가 된다.
내가 당신을 노랑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내게 민들레 홀씨로 날아올 것이다.
내가 당신을 파랑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머리 위에 총총 별무리를 숨긴 푸른 하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나는 끙끙 소리를 내며 당신의 겨드랑이 밑으로 아늑한 봄볕처럼 파고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