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 place to love
"정말 좋은 데 가서 해요. 우리, 제주도로 갈까요?"
"제가 제주도에 환장한 줄 아세요?"
영화 《오! 수정》에서 이은주와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정보석은 제주도 카드까지 꺼낸다.
다행히 제주도까지 가지 않고도 서울의 호텔에서 소원을 성취한 정보석은 이은주가 처녀임을 확인하고
감격한다.
"자긴 피까지 흘렸는데 고기 먹어야죠?"
"뭐예요."
...
"난 문제없어요. 난 내 짝을 찾았는데 뭘. 정말 난 문제없어요."
"나도요."
"내가 가진 모든 결점들 목숨 걸고 고칠게요. 약속해요. 수정 씨."
이은주와 한 번 하는 도중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른
내성적인 바람둥이 정보석이가 그때의 감격과 결심을 몇 쪼간이나 끌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전에 본 홍상수 감독의 그 영화 이후,
내게 제주도의 이미지 중 하나는 '한 번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오해로 남아있다.
대학 졸업여행을 시작으로 수 차례 여행 온 제주도이지만
그래도 게 중 가장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신혼여행이다.
그 시절 신혼여행 사진은 거의 다 똑같았다.
성읍 민속마을에서 물허벅 매고 한 번 찍어야 하고
천지연 폭포 앞 바위에서 신랑 무릎에 앉아서 또 한 번 찍어야 했다.
웬일로 그 시절에는 한복까지 처싸들고 여행을 갔으니
가이드의 지시 아래 성산 일출봉 풀밭에서 신랑이 한복 입은 신부를 들쳐업고
쪼론히 일렬로 사진도 찍었야 했다.
어쨌든,
나의 첫날 밤은 편지 낭독과 기도로 기억되니
돌아보건대 그런 황당한 작위적 삼류 드라마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정갈하게 그를 앉혀놓고 미리 준비한 편지를 그에게 읽어줌으로써
그를 향한 나의 애정과 결심, 바램 따위 등의 비전을 공포하는 의례를 치렀던 것이다.
한 박자 빠른 '고마워'와 끝이 쳐지는 '어, 어'의 영혼 없는 리액션은
이미 그의 정신이 딴 곳에 있음을 -뭐 하고 있냐, 언제까지 할래, 승질을 낼 수도 없고- 보여주고 있었다.
정보석이처럼 자신의 유일한 학습목표가 자꾸 미뤄지는 이유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러
눈빛이 이미 이상해져 있는 그의 두 손을 붙잡고 내가 준비한 마지막 의식인 기도를 했다.
그 시절 한참 물이 오른 나의 신심은 우리 결혼생활의 처음을 그분께 의뢰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트를 제단 삼아 식전 의식을 마쳤을 즈음
이빠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그의 욕망도 어쨌든 다시,
불
살
라
졌
겠
지,
아마도.
제주도는 한 번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니까.
-비자림
-거문오름
-카페 시인의 집: 임시 휴무일이어서 허탈
어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나의 늙은 신랑은
'와, 정말 좋다. 바다가 보이는 뷰에 끝내주는 호텔이네. 오늘 밤은 그냥 자면 죄다, 죄야.'
연신 방방거리더니, 아홉 시도 못되어 그냥 죄인이 되고 말았다.
땡큐, 나의 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