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롭지 않은 사람
선희: 같이 사니까 좋아요? 어떤 점이?
시오: 음..., 해롭지 않은 사람이에요. 전혀 해롭지가 않은 안전한 사람.
선희: 우와, 처음 듣는 표현이에요. 참 좋다!
시오: 혼자 살 때는 항상 구멍이 뚫려있는 느낌이었어요.
포근한 솜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도 따뜻하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패인 홈이 메워진 느낌이에요.
몸이 좋지 않아 개학 이후로 쉬었던 그림을 지난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전라감영로에 있던 화실이 완주 봉동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통행료 1300원을 내고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내비님이 고속도로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이다.
생강 가공 공장을 개조한 화실은 뜰이 넓어
늙은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고 해질 무렵이면 창틀에 한참이나 걸려있는 석양이나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완두콩 등 볼 게 참 많다.
가끔 샘의 강아지 호크니와 모네도 놀러 와 나의 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시내를 벗어난 외진 곳에 있다보니 상담만 하고 등록은 하지 않는 수강생이 많아
샘을 독차지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샘, 오늘은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림을 누워서 그려야겠어요. ㅎㅎ'
피곤을 핑계대고 느릿느릿 붓질을 하던 내게
시오샘은 이 년 쯤 전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해롭지 않은 사람'
혼기를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슬아슬한 나이에 만난
그녀의 안사람(그렇게 부르고 있다)은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절대로 같은 전공자와는 사귀지 않겠다던 결심과는 다르게
수더분한 그 남자를 만나 봉동 촌년이 되어 결혼식도 없이 살림을 시작한 그녀를 보며
양귀자의 단편 <숨은 꽃>의 남녀가 떠올랐었다.
목적어 대신 주어와 술어에 방점을 두는 삶이라고 할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보다
스스로 정성껏 고른 선택에 몸을 맡기고 나비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어도 먼 적이 없다.
'해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묘사를 들으며
덧칠이나 첨삭이 필요 없는 여백이 많은 수채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나오는 길,
가끔 채소에 물을 주러 온다는 샘의 엄마와 뜰에서 마주쳤다.
갓 솎은 상추와 완두콩을 한 봉다리 쥐어 주셨다.
어두워진 외곽도로를 벗어나 송천동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며
나를 해로웠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꽃을 밟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가 누군가의 발을 밟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