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 둔 단편소설같은
사월은 다시 읽는 단편소설 같다.
예닐곱 편의 소설 목록 속에서
쉬이 눈에 띄어 골라 읽었던 것들 빼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던 놓쳐 둔
벌레 먹은 두어 편의 남겨진 소설들,
그것들을 잊지 못해 책꽂이에서 다시 뽑아 읽는,
그 단편소설 같다.
세상의 황홀을 온통 흠뻑 흡수한 듯한 벚꽃의 화사함은 잠깐이었다.
만발이라는 단어는 이미 땅바닥에 꽃잎을 떨구고 있는 형상이라서
끝을 알고 시작하는 사랑과도 같이 불안하고도 처연하다.
대신,
꽃 진 자리
새로이 돋아나는 연두색 새잎들이 와글와글 소란스럽다.
벌들이 웅웅대는 외딴 행성의 과수원에서
사과꽃을 솎아내어주고 있을 이름 모를 외계 시인에게
지구별의 아름다움을 적어 보낼 일이 있다면 4월의 신록을 빠뜨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병가를 내고 딱 두 달만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이 봄을 보내고 있다.
새로 맡은 업무는 낯설고 어설프며
고장 난 몸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딸딸이처럼 무기력하다.
한 두줄 쓰다가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
임시 저장함에 밀쳐 넣어 둔 몇 편의 정처 없는 글들처럼
마음을 빌려주고, 또 빌려오는 일이 좀체 흥이 오르지 않는다.
내 생애 할당된 다정함을 이미 다 써버린 듯 적막하다.
그럼에도
봄이다.
봄밤이다.
댕강댕강 새벽종 같은 하얀 사과꽃 소담히 피어나고
생명 있는 것들, 실눈 뜨며 세상에 태어나는 봄밤이다.
벌레 먹은 풋사과들만 모아 만든 푸른 잼과
너무 많이 달렸다는 이유로 따낸 못난 과실들로 만든 과일청 유리병에 담아
소식이 끊긴 나의 친구에게 보내고 싶다.
봄이 되면
다 읽지 못한 놓쳐 둔 단편소설처럼 가끔 뒤돌아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