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You made my day.

Tigerlily 2021. 11. 11. 13:06

 

1.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화분 두 개를 샀다.

몬스테라와 블루스타.

 

마음이 로빈슨크루소한 날에도,

기분이 신데렐라한 날에도,

화분을 산다.

 

꽃삽으로 깊은 뿌리까지 떠서 여분의 화분에 옮기고

화초의 허리를 꼿꼿이 세워 모양을 잡아준다.

햇빛이 가장 짱짱하게 들이치는 앞 베란다에 놓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노라면

남실남실 즐거워진다.

 

말 없는 것이 전하는 허름하고도 고요한 위로이다.

 

거의 폐가가 되고 있는 동산촌 집, 장독대에서

단지 뚜껑을 하나 주워 왔다.

단골 화원에 가서 오색 마삭줄을 사다가 심었다.

그 옛날 자주 꾸던 꿈속의 도피처였던 내 키만 한 간장독,

독 안에 몸을 숨겼으나 미처 닫지 못해 북한군에게 적발되어

총에 맞아 죽곤 하던 그 문제의 간장독의 뚜껑이

이제는 까칠한 야생의 식물 하나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2. 벌레 먹은 사과를 모아두었다가 담아놓은 잼 같은

 

"미안해, 미안해, 우리 백구, 정말 미안해."

 

엄마가 막내아들 네 집으로 가신 후

동산촌 집은 백구 혼자 지킨다.

가끔 들러 사료와 물을 부어주고 가는 막내 오빠가 유일한 방문객이다.

 

어쩌다 방문하여 잠시 놀아주다가 다시 목줄을 묶고 돌아서서 바라보는

우리 백구의 눈망울은 사람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들어간다.

백구의 목을 끌어안고 또 한 번 약속한다.

"금방 또 올게."

 

어느 하루 날 잡아 종일토록, 백구의 애달픔이 다 해갈되도록 놀아줘야지,

마음만 먹었지 실천을 못하고 있던 터에 셋째 오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백구를 데려가겠다고, 새로 이사한 장성의 전원주택에 백구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그 밤 나는 밤늦도록 춤을 추었다.

분홍색 레이스 끈이 내려가는 줄 모르고 춤을 추었다.

 

오빠가 나와 백구를 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