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홍글이

Tigerlily 2021. 6. 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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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어느 날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난 두 명의 남학생이 내게 도움을 청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연극을 하는데 영어로 대사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몇 문장을 영어로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흔쾌히 도와주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영문과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존함이?"

"조나미요? 우리 과에 서나미는 있는데 조나미라는 학생은 없는데요?"

 

익산에서 통학하는 이쁘장한 서나미라는 여자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을 뱉음과 동시에

아차, 나는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며 얼굴이 빨개졌고,

그 두 남자는 '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런 여름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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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집 옆에 붙어있던 작은 아빠 댁을 자주 놀러 갔었다.

마루에 누워 빈둥거리다가 보게 된 벽에 걸린 액자에는

호랑이가 대나무 숲에서 나오는 그림과 함께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그 시절  내내 나는 '인내'라는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다.

'사과나무'처럼 '인내'라는 나무가 있을 거라는 생각과 그 나무에 달린 열매는 사과처럼 달콤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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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종대왕이라는 조선시대 왕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분의 이름이 '종대'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끝에 붙은 '왕'이야 이즈음의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령'처럼

호칭일 테고 '세'는 성일 테니 당연히 이름은 '종대'겠거니 생각했다. 단지 참 성이 희한하다, 라는 생각은 했었다.

 

 

 

 

 

 

 

우리 재형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서재방에서 내게 달려오더니

'엄마, 엄마, 홍글이가 누구야?'

'홍글이? 그게 누구지? 엄마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재형이는 서재방으로 달려가더니 책 한 권을 뽑아왔다.

그것은 바로 나다니엘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글씨》였다.

 

아, 이 놀라운 DNA의 힘이여!

 

 

그 꼬마, 홍글이가 장가를 갔다.

이제 어른이란다.

우리 홍글이,

재미나게 신나게 신랑 놀이 잘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