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째쟁이 선히

Tigerlily 2021. 5. 14. 13:32

 

 

딱히 별명이 있지는 않지만

그나마 교무실에서 몇 명의 동료 샘이 간간이 나를 부르는 말이 있다면

'째쟁이'이다.

 

행동이나 마음씀의 멋스러움과 깊이가 외양에까지 스며들어

전체적으로 풍기는 아우라에 세련된 품격이 넘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호칭인

멋쟁이,

그 멋쟁이라면 모를까, 째쟁이라니.

 

옷을 이쁘게 입고 다닌다,는 표면적 이유 뒤켠에는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숨어있는 듯하여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 호칭이다.

과장되게 대답하거나 혹은 들은 척도 안 하는 소심한 반항으로

듣기 싫음을 내색하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담장 안으로 저승사자를 들여보내 준

요사스러운 도화꽃의 분별없는 호의처럼 

언제부턴가는 그 호칭이 슬금슬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째쟁이,

단장(丹裝)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찾아 즐긴다는 것 아닌가.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새빨간 장미꽃 타투를 새겨놓은 사람처럼

비밀스럽게 피었다 지고 또 피는, 나만 아는 내밀한 즐거움을 가진 자 아니던가.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초가을 연꽃 구경을 위해 모이고

국화가 피면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모이고

연말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피면 모인다

 

다산 정약용의 시 모임 스케줄이라고 한다.

 

학구파 싸나이 정약용은 알고 보니 진정한 멋을 아는 멋쟁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를 읊어대는 그를 향해

말쟁이들이 과연 멋쟁이라고 불렀을까.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철 따라 째나 내는 '철딱서니 없는 한량 놈'이면 충분했으리라.

 

신록이 악악거리는 5월이 다 가기 전에

나도 내가 편파적으로 편애하는 벗들에게 연락하고 싶다.

연둣빛 황홀이 우리 뜨락에 가득하니

핑계삼아 한 잔 하자고,

달빛 아래 앉아 밤이 지도록 같이 시를 읽자고.

 

멋쟁이면 어떻고

째쟁이면 어떤가,

 

이쁜 것 앞에, 아름다운 것 앞에

이토록 꼼짝 못 하고 전율하는 나로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지.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내 생이여,

아름답고 쓸모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