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쟁이 선히
딱히 별명이 있지는 않지만
그나마 교무실에서 몇 명의 동료 샘이 간간이 나를 부르는 말이 있다면
'째쟁이'이다.
행동이나 마음씀의 멋스러움과 깊이가 외양에까지 스며들어
전체적으로 풍기는 아우라에 세련된 품격이 넘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호칭인
멋쟁이,
그 멋쟁이라면 모를까, 째쟁이라니.
옷을 이쁘게 입고 다닌다,는 표면적 이유 뒤켠에는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숨어있는 듯하여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 호칭이다.
과장되게 대답하거나 혹은 들은 척도 안 하는 소심한 반항으로
듣기 싫음을 내색하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담장 안으로 저승사자를 들여보내 준
요사스러운 도화꽃의 분별없는 호의처럼
언제부턴가는 그 호칭이 슬금슬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째쟁이,
단장(丹裝)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찾아 즐긴다는 것 아닌가.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새빨간 장미꽃 타투를 새겨놓은 사람처럼
비밀스럽게 피었다 지고 또 피는, 나만 아는 내밀한 즐거움을 가진 자 아니던가.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초가을 연꽃 구경을 위해 모이고
국화가 피면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모이고
연말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피면 모인다
다산 정약용의 시 모임 스케줄이라고 한다.
학구파 싸나이 정약용은 알고 보니 진정한 멋을 아는 멋쟁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를 읊어대는 그를 향해
말쟁이들이 과연 멋쟁이라고 불렀을까.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철 따라 째나 내는 '철딱서니 없는 한량 놈'이면 충분했으리라.
신록이 악악거리는 5월이 다 가기 전에
나도 내가 편파적으로 편애하는 벗들에게 연락하고 싶다.
연둣빛 황홀이 우리 뜨락에 가득하니
핑계삼아 한 잔 하자고,
달빛 아래 앉아 밤이 지도록 같이 시를 읽자고.
멋쟁이면 어떻고
째쟁이면 어떤가,
이쁜 것 앞에, 아름다운 것 앞에
이토록 꼼짝 못 하고 전율하는 나로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지.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내 생이여,
아름답고 쓸모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