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나의 섬

Tigerlily 2021. 5. 11. 10:47

 

 

맘껏 울 수 있는 혼자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방에 홀로 들어앉아 울 일이 얼마나 있을까만은

어떤 간섭이나 침범으로부터 감정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을 의미할 것이다.

섬, 섬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나만의 섬.

 

 

둘째 재형이의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엊그제 남편에게 특별한 요구를 했다.

"장가가고 나면 재형이 방 나 줘."

"방 많잖아. 홍균이 방, 서재 방, 안방, 다 가져."

"다 말고. 재형이 방을 내 방으로 따로 만들고 싶어."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시골의 큰 집에서 여섯 남매의 막내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나만의 개인 방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도 없었다.

형제들이 다 객지로 나가게 되어 집이 텅 비게 되었던 나의 이십 대에는

구들의 온기가 미치지 않아 쓸모가 없었던 두어 개의 침침한 방들 대신 

홀로 계신 엄마와 자매처럼 안방을 같이 썼다.

 

 

나만의 방에 대한 그리움은

혼자 자취를 하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나

퇴근 후 홀로 오피스텔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는 드라마 속 도회 여자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이어졌다.

마치 발달단계에서 거쳐야 할 한 단계를 빼먹은 아이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흠집처럼 

어른을 넘어 하나 둘 꿈을 접어야 할 장년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한 아쉬움과 목마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 방에서 뭐하려고?"

"음... 그냥 혼자 누워있고도 싶고, 혼자 책을 읽고도 싶고. 뭘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는 고요와 적막의 공기는 훨씬 아늑할 것 같다. 

 

그냥 나만의 방을 내 식대로 꾸며놓고

(깨끗한 시트의 침대와 책을 읽을 의자와 화분 하나 정도)

그 안에 가끔 들어가 있고 싶을 뿐이다.

나의 섬에 갇혀서 내 마음의 밀물과 썰물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싶을 뿐이다.

 

그곳에서만 건넬 수 있는, 내 마음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