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스텝이 엉키면
Tigerlily
2014. 12. 29. 11:28
"조금 걱정이 되네요"
"뭐가요?"
"제가 실수를 할까봐요."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거에요.
만일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죠.
한번 해봅시다."
일년에 겨우 한 두번 만나는 고향친구 모임 화.냥.연.화.
생미역에 쪽파, 마늘, 깻잎 얹어서
연한 배추 속잎에 싸먹는 과메기는 볼테기가 미어지게 맛났다.
쏘맥의 안주로서 최고였지만
후루꾸 총각 점쟁이, 요셉이를 졸라 듣는
'재미로 보는 신년운세'는 훨씬 솔깃솔깃, 쫄깃쫄깃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5반 시절의 어느 날, 담쌤의 부탁에 따라
결석한 그의 집을 찾아갔던 나의 그날의 의상과 말투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요셉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가슴 속의 그녀, 경숙이의 결혼소식을 듣고
종일 울었다는 그의 기억의 조각들에서는 알록달록 백일홍 냄새가 났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영화 <여인의 향기>,
마지막 선택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실패한 장님 프랭크가
허탈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며 한 말이다.
그의 자살여행에 동행했던 청년 찰리는 말한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
어영부영 새 해가 오고있다.
영빨 여간 아닌 요셉이의 점괘보다
프랭크가 했던, 그리고 찰리가 다시 되돌려주었던
그 말이 훨씬 현실적이다. 믿을만하다. 효험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