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레옹의 화분

Tigerlily 2020. 12. 2. 15:34

 

동그란 선글라스와 화분, 그리고 붉은 커버의 우유팩은

영화 <레옹>의 주인공 레옹의 상징물이다.

해가 뜨면 항상 창문을 열고 화분을 햇볕 아래 내어 놓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놓으며 소중히 다룬다.

 

'제일 친한 친구야.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안 해.

나 같지? 봐봐.

뿌리도 없지'

 

푸른 화분,

어떤 합리화로도 아름답게 포장될 수 없는 직업, 살인청부업자인 그가

자신의 마음에 보내는 작은 엽서 같은 속죄의 몸짓 아닐까.

고독하고 매력적인 킬러로 우리 뇌리 속에 남아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쩌면 이런 화분이나 우유와 같은 오브제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놈이 원래 그리 험악한 놈을 아닐 거라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피치 못할 그 사정에 화살을 겨누게 만드는.

 

 

 

 

 

독서 모임 '봄'의 12월의 책을 선정했다.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읽자고 내가 제안했다.

몇 년 전 서부중앙교회에서 노재석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했을 때 목사님께서 추천하신

필독서 중의 한 권이어서 사실은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책이다.

울긋불긋 세상 물이 흠뻑 든 내 마음의 독소를 잠시 표백시켜줬던 은혜로운 책의 내용을

회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사실은

한 해의 끝인 12월의 문턱에서 '균형 맞추기'가 필요한 까닭이 더 컸다.

 

나무 됫박에 정확하게 쌀을 담기 위해서는

대충 쌀을 푼 후 두 손으로 됫박을 감싼 채로 좌우로 흔들어 평평하게 하는 작은 움직임이 필요하듯

내키는 대로 대충 살다가도 가끔 걸음을 멈추어 영혼을 흔들어 주는 작업을 한 번씩 하게 된다.

 

신앙의 신조가 되었든, 

사회적 가치가 되었든

누구나 마음속에는 나름의, 깜냥의 반짝이는 도덕률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간신히 생존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에 의해 날마다 스스로를 통제 하기에는 우리 영혼의 고삐는 느슨하고, 신의 관용은 크다.

그러다가 누적된 후회가 자기 심사의 그물에 통째로 걸릴 때 쯤되면

레옹의 푸른 화분이 필요하다.

내 영혼의 물타기와 균형 맞추기가 필요한 것이다.

 

대학교 4학년, 취업과 졸업논문으로 가장 분주할 시기에

버스를 타고 장승백이를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백학야학.

다정했던 갈탄 난로의 매캐한 불냄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꼬마에서 어른까지 대중없이 섞여있었던 한 밤의 검은 눈동자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함부로 살았던 내 청춘의 면죄부가 딱 그 때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2월이다.

 

'멋지게'가 아니라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램은 여전하다. 

한 해의 가장자리에서 올 해도 어김없이

내 작은 몸을 흔들며 이렇게 저렇게 균형 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 역시 내겐 중요한 생존의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