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화학선생님

Tigerlily 2020. 11. 19. 10:54

 

 

 

중간고사 화학 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 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 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혀

그 점수가 영 믿기지 않았지만

백발성성한 지금도 이 세상에는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다는 걸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 화학 선생님 / 정양

 

 

 

 

 

 

 

11월의 목요일 아침, 비가 많이 온다.

입고 나온 분홍 스웨터가 덥다.

 

1교시 2학년 9반 수업,

How is the weather today? 했더니

Fuck~!! 이라고 용욱이가 대답했다.

그래, 날씨가 존나 시발이지?

 

화를 숨기며 최대한 꼰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입술을 옆으로 길게 늘여 곱고 부드럽게

어떤 음절에도 강세를 넣지 않고 시~발~하고 발음을 했다.

순간 시어(詩語)처럼 들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용욱이 새끼 따라 나와

'샘, 오늘 점심시간에 3반하고 축구하기로 했는데 비 와서 못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했다.

 

댓'츠 오케이~!

 

겨울비가 시발스럽게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