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태를 보내고 뜯지도 못한 담배를 가게에서 환불한다.
교환을 해야지 환불은 안된다 여편네가 쫑알거렸지만
풋, 나 같은 베테랑에게 어디 통할 법이나 할 소린가.
저 멀리 찜질밤의 네온을 바라보며 나는 걷기 시작한다.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운 이유를, 또 도망치듯 집을 나온 진자 이유를
병태에겐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참 스팀이 올라 물건을 집어던질 때였다.
시계며 라디오까지...
그러다 무려 일 년 가까이 차 한 대 팔지 못한 현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뭔가 더, 던지고 부술 것이 필요했다.
뭐 없나? 경대며 장롱의 서랍까지 와르르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라잇~ 하는데 툭, 뭔가가 떨어졌다. 뭐야 좆같이.. 하고 보는데
과연 좆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당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딜도였다.
내 거보다 세 배...굵직하고 거무틱틱한 그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열 달이 뭐고 일 년이 다 뭔가...
그러고 보니 한 삼 년은 된 것 같았다.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답니다.
그런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홉 시 뉴스 같은 느낌으로 귓속을 꽝꽝 울리는 것이었다.
- 박민규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의 일부-
눈을 했다.
속눈썹을 심었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털 빠진 암탉같이 생기가 없어진 눈자위를 볼 때마다
뭔가 손을 대지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할 임계점에 도달하였음을 절감했었다.
기실, 손 댈곳을 얘기하자면 어디 한 두군데일까.
작은 키는 내 인생의 필수템, 하이힐로 높이고
칙칙해지는 얼굴은 물광 쿠션으로 덮어 씌우고
작은 가슴은 (애인이 없으므로) 수선 항목에서 제하고
엉덩이가 쫌 컸으면... 뭐, 뭐 붙는 바지 피하면 되지.
가장 쉬운 게 속눈썹 증모였다.
'표 안나게 해주세요.
근데 너무 표 안나도 안되는 거 아시죠?'
위태위태한 가정을 딜도가 지켜줬듯이
우리의 불안과 자격지심에 불끈불끈 약을 쳐 주는 것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어쩌면 세상천지 발명품의 구십삼 프로는
푹 쳐져서 좀체로 고개를 들지못하는 우리의 약점들을
지탱해주고 세워주고 채워주는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3주마다 한번씩 나의 속눈썹은 AS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 때마다 사만원의 적지 않는 돈이 들어가겠지만
어쩌겠는가, 십일조를 줄여서라도 심어야지.
그게 더 천국에 쉬이 가는 길일지도 모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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